아웃포커싱과 보케는 왜 생기나
알쓸
아웃포커싱은 좋은 렌즈가 만들어주는 효과가 아니라 점이 원이 되어버린 결과다. 같은 크기로 사람을 잡아도 35mm로 붙어 찍은 것과 85mm로 물러나 찍은 것은 다른 그림이 된다. 니콘 DC 니코르 135mm f/2 개발기는 앞과 뒤를 동시에 좋게 만들 수는 없다고 적었다.
인물 뒤 불빛이 동그랗게 뭉개진 화면. 그걸 보케라고 부른다.
좋은 렌즈가 만들어주는 효과처럼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반대다. 렌즈가 점을 점으로 못 맺어서 생기는 실패의 결과다. 그 실패를 예쁘게 쓰는 것뿐이다.
아웃포커싱은 왜 생기나
점이 점으로 안 맺히고 원이 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보면 이렇다.
빛은 사방으로 퍼진다. 촛불 하나에서 나온 빛은 온 방향으로 나간다.
렌즈는 그중 일부를 받아서 다시 한 점으로 모아준다. 원뿔 모양으로 좁아지다가 한 점에서 만나는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그 꼭짓점이 정확히 센서 위에 놓이면 "초점이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꼭짓점이 센서보다 앞이나 뒤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센서에는 점이 아니라 원뿔을 중간에서 자른 단면이 찍힌다. 그게 동그란 원이다.
이 원을 착란원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circle of confusion. 어려운 이름이지만 뜻은 단순하다. 점이 되어야 할 게 원이 된 것이다.
보케는 이 원이 눈에 보일 만큼 커진 상태다.
그럼 초점이 정확히 맞으면 원이 0이 되나. 안 된다. 렌즈가 아무리 좋아도 빛은 한 점으로 무한히 모이지 않는다. 에드먼드옵틱스의 에어리 원반 설명에는 회절로 생기는 이 무늬가 빛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점이라고 되어 있다. 회절이랑 남은 수차 때문에 항상 아주 작은 원이 남는다. 이 렌즈와 이 센서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원, 그게 최소착란원이다.
그러니까 초점이 맞았다는 건 원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원이 눈에 안 보일 만큼 작아졌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를 "안 보인다"고 할 건지가 다음 편에서 다룰 심도 이야기다.
보케 모양은 왜 렌즈마다 다른가
렌즈마다 조리개 날 수와 모양이 달라서다. 착란원은 빛이 통과한 구멍의 모양을 그대로 베낀다.
조리개는 얇은 날 여러 장이 겹쳐서 구멍을 만든다. 날이 몇 장이냐에 따라 구멍이 육각형이 되기도 하고 원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 모양이 그대로 보케 모양이 된다.
- 조리개를 활짝 열면 구멍이 거의 원이라 보케도 동그랗다
- 조이면 날 모양이 드러나서 각진 보케가 된다
- 화면 가장자리에서는 렌즈 통에 빛이 잘려서 고양이 눈처럼 한쪽이 깎인다
배경 불빛을 잘 보면 화면 가운데는 동그랗고 구석으로 갈수록 눈 모양으로 찌그러진 걸 볼 수 있다. 렌즈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긴다. 칼자이스 카메라렌즈부문이 낸 「Depth of Field and Bokeh」의 조리개 상 항목을 보면, 조리개를 연 상태에서 화면 가장자리로 가는 광선다발이 경통 앞뒤나 앞뒤 렌즈알 지름에 잘려서 그렇게 된다고 되어 있다.
배경 날리려면 조리개부터 열어야 하나
"배경 좀 날려주세요"는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대개 이유는 둘이다. 배경이 너무 지저분하거나, 인물에 집중시키고 싶거나.
그런데 이때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조리개가 아니다.
착란원은 초점에서 멀어질수록 커진다. 배경이 멀수록 더 크게 뭉개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물을 배경에서 한 걸음 더 떼어놓는 게 조리개를 한 단계 여는 것보다 효과가 클 때가 많다.
조리개를 건드리는 게 왜 성가시냐면, 노출과 심도가 한 다이얼에 묶여 있어서다. 얕게 가려고 열면 화면이 같이 밝아지니까 ND를 넣든 셔터를 만지든 어디선가 되돌려놔야 한다. 사람을 한 걸음 옮기는 건 그런 게 없다. 배경만 멀어지고 나머지는 그대로다.
배경이 지저분해서 날리고 싶을 때, 먼저 볼 건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 세울 자리다.
다만 이건 사람마다 갈린다. 심도로 뭘 표현하려는 사람이 있고, 심도를 그렇게 안 쓰는 사람이 있다. 광각을 선호하는 쪽으로 갈수록 심도로 뭔가를 하는 일이 줄어든다. 배경을 지우는 게 아니라 배경까지 다 넣고 화면을 짜는 쪽이니까. 그러니까 "배경은 날리는 게 좋다"가 아니라 그 감독이 어느 쪽 사람이냐의 문제에 가깝다.
망원렌즈로 가면 왜 더 흐려지나
초점거리가 길어지면 — 흔히 말하는 망원으로 가면 — 상이 그만큼 확대된다. 착란원도 같이 확대된다.
그래서 조리개를 안 건드리고 한 단계 긴 렌즈로 가서 뒤로 물러나는 방법이 있다. 인물 크기는 비슷하게 유지되면서 배경은 훨씬 크게 뭉개지고, 덤으로 배경이 압축돼서 정리된다.
대신 물러날 공간이 있어야 한다. 좁은 방에서는 이 방법이 아예 없다. 현장에서 렌즈 선택이 공간에 묶이는 이유다.
같은 크기로 사람을 잡아도 35mm로 바짝 붙어서 찍은 것과 85mm로 물러나서 찍은 것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 화각만 보고 렌즈를 고르면 이걸 놓친다.
앞보케와 뒷보케는 왜 모양이 다른가
초점보다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은, 같은 정도로 흐려져도 모양이 서로 뒤집혀 나온다. 빛이 초점에서 한 번 교차하기 때문이다.
한 번쯤 봤는데 이유는 잘 모르는 현상일 거다.
- 초점보다 앞 — 빛이 아직 한 점으로 모이는 중이다. 센서에 닿는 원은 렌즈 구멍 모양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 초점보다 뒤 — 한 번 모였다가 다시 퍼진 상태다. 교차를 지났으니 위아래·좌우가 뒤집힌 모양이 된다
조리개가 완전한 원이면 뒤집혀도 티가 안 난다. 그런데 아까 말한 고양이 눈처럼 한쪽이 깎인 보케는 방향이 그대로 보인다. 앞뒤 보케에서 깎인 방향이 반대로 나오는 게 그 증거다.
밝기도 갈린다. 한쪽은 테두리가 밝고 가운데가 어둡게, 반대쪽은 가운데가 밝게 나온다. 같은 자이스 문서의 구면수차 항목을 보면 구면수차가 덜 교정된 렌즈에서 초점보다 앞의 원은 바깥에 밝은 테가 또렷하게 둘리고, 초점보다 뒤의 원은 안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어두워진다.
배경에 불빛이 많은 화면을 만들 때 이게 실제로 걸린다. 같은 조명인데 사람 앞에 두느냐 뒤에 두느냐로 보케 성격이 달라진다. 니콘의 DC 니코르 135mm f/2 개발기는 앞과 뒤를 동시에 좋게 만들 수는 없다고 적고, 링을 돌려 구면수차를 앞뒤 중 어느 쪽에 걸지 고르는 렌즈를 내놨다.
하트 보케, 별 보케는 어떻게 만드나
착란원이 빛이 지나온 구멍 모양을 베낀다는 걸 알면, 구멍을 바꿔서 보케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하트나 별 모양으로 구멍을 뚫은 마스크를 만들어서 매트박스 앞에 끼운다. 그러면 배경 불빛이 전부 그 모양으로 나온다.
여기서 조리개를 어떻게 두느냐가 핵심이다. 조리개를 조이면 보케가 작아지니까 모양이 안 보인다. 그래서 조리개는 개방으로 열어두고, 마스크 구멍을 그 조리개 구경보다 조금 작게 만든다. 그래야 마스크가 실질적인 조리개가 되면서 모양이 찍힌다.
대가는 밝기다. 조리개를 열어놨는데도 실제로 빛이 지나는 구멍은 마스크 크기니까, 화면 전체가 어두워진다. 열고 찍는데 어둡다는 게 좀 이상한 상황인데 그렇게 된다.
그리고 렌즈마다 따로 만들어야 한다. 조리개 구경이 렌즈마다 다르니까 마스크 크기도 같이 달라진다. 50, 75, 100, 135 다 다르게 뚫는다. 단렌즈 기준으로는 표준 이상부터 쓸 만하다. 광각으로 가면 배경이 충분히 안 뭉개져서 모양이 안 산다.
여기서 앞 절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 앞뒤 보케는 서로 뒤집혀 있으니까, 하트 마스크를 끼우면 인물 앞의 하트와 뒤의 하트가 반대로 선다. 원일 때는 티가 안 나던 게 하트로 바꾸는 순간 눈에 보인다. 어느 쪽에 조명을 둘지를 그걸 알고 정해야 한다.
렌즈베이비 같은 물건도 있다. 근데 그건 보케만 바뀌는 게 아니라 렌즈 자체의 성격이 통째로 바뀌어버려서, 안 쓰는 사람도 많다.
요즘은 후반에서 CG로 얹는 경우도 많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결과도 나쁘지 않다. 근데 현장에서 진짜로 만들어보는 게 재미는 훨씬 있다.
결국 보케는 렌즈가 만들어주는 효과가 아니라 점이 원이 되어버린 상태다. 크기는 초점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랑 초점거리가 정하고, 모양은 빛이 지나온 구멍이 정한다.
그러니까 배경이 지저분할 때 손댈 데가 조리개, 거리, 렌즈 이렇게 셋인데, 그중에 잃는 게 제일 많은 게 조리개다. 밝기도 흔들리고 초점 맞는 범위도 같이 얇아지니까.
근데 여기까지는 원이 커지는 얘기만 했다. 이 원이 얼마나 작아야 "선명하다"고 부를 수 있는지는 아직 안 정했다. 그 기준을 심도라고 하는데, 다음 편이 그 얘기다.
심도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적었다.
영상 · 촬영피사계심도란 무엇인가 — 재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봐주느냐다댓글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