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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왜 같은 촬영감독을 계속 쓰나 — 스필버그 영화 21편을 한 사람이 찍었다

알쓸

1993년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 장편 21편을 야누즈 카민스키가 전부 찍었다. 로저 디킨스는 열세 번 떨어지고 열네 번째에 받았고, 놀란은 두 사람과 한 시대씩 만들었다.

영화 크레딧에서 촬영감독 이름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직업이 그래서 보는데, 보다 보면 같은 이름이 계속 나온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런데 이게 한 번에 안 나온다. IMDb에서 작품 하나 열어 촬영 크레딧 확인하고, 다음 작품 열고, 또 열고. 감독 한 명당 스무 번쯤 눌러야 한 줄이 나온다.

그래서 눌러본 걸 여기 모아둔다.

제일 오래 간 짝은 누구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야누즈 카민스키 촬영감독이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33년, 21편이다.

편수보다 놀라운 건 예외가 없다는 점이다. 1993년 「쉰들러 리스트」 이후 스필버그가 연출한 극장 장편이 21편인데, 그 21편을 전부 카민스키가 찍었다. 중간에 다른 사람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2022년 「파벨만스」가 스무 번째였고, 2026년 6월 나온 「Disclosure Day」가 스물한 번째다. 이 작품 크레딧에는 촬영 카민스키에 음악 존 윌리엄스, 각본 데이비드 코엡이 같이 올라 있다.

그 전에는 누가 찍었나

3편이 최장 기록이었다. 21편은 그 일곱 배다.

촬영감독기간스필버그 장편
빌모스 지그몬드1974~19772편
앨런 다비오1982~19873편
더글러스 슬로컴1981~19893편 (인디아나 존스 1·2·3)
딘 컨디1991~19932편
야누즈 카민스키1993~202621편

앨런 다비오는 1968년 스필버그 단편 「앰블린」부터 함께했으니 인연으로 치면 19년인데, 그 사이 장편은 3편이다.

교체는 어떻게 일어났나

교체라기보다 그냥 다음 작품부터 사람이 바뀌었다.

1993년에 스필버그 영화가 두 편 나왔다. 6월에 「쥬라기 공원」, 12월에 「쉰들러 리스트」다. 앞엣것은 딘 컨디가 찍었고 뒤엣것이 카민스키다. 한 해 안에서 갈렸다.

스필버그가 카민스키를 알게 된 건 TV였다. 1991년 다이앤 키튼이 연출한 TV영화를 보고 눈에 띄어서, 먼저 자기가 제작하는 TV영화를 맡겼고 그다음이 「쉰들러 리스트」였다.

카민스키는 상을 몇 번 받았나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 7회에 수상 2회다. 그런데 첫 후보가 곧 첫 수상이었다.

「쉰들러 리스트」로 1994년 제66회에서 받았다. 데뷔전이 곧 우승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1999년 제71회.

여기서 재미있는 게 나온다. 촬영감독들이 직접 뽑는 상이 따로 있다. 미국촬영감독협회, ASC 상이다. 카민스키는 여기 여섯 번 후보에 올랐는데 한 번도 못 받았다.

연도작품아카데미ASC
1993쉰들러 리스트수상후보
1997아미스타드후보후보
1998라이언 일병 구하기수상후보
2007잠수종과 나비후보후보
2012링컨후보후보
2015스파이 브릿지후보 없음후보

오스카를 받은 두 해 모두 ASC에서는 졌다. 1993년은 콘래드 홀 촬영감독이 「보비 피셔를 찾아서」로, 1998년은 존 톨 촬영감독이 「씬 레드 라인」으로 가져갔다.

같은 작품을 두고 아카데미 회원들과 촬영감독들이 다르게 뽑았다는 뜻이다.

무엇이 갈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은 간다. 「쉰들러 리스트」의 흑백과 흔들리는 핸드헬드는 화면만 봐도 압도되는 쪽이다. 반면 촬영감독들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같이 본다. 어려운 조건에서 조용히 해낸 화면에 표가 가는 일이 있다. 어느 쪽이 맞다는 게 아니라 보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참고로 카민스키는 1994년에 ASC 회원이 됐다가 2006년에 탈퇴했다.

로저 디킨스는 몇 번 만에 받았나

열네 번째 도전에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후보에서 또 받았다.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은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열여섯 번 올랐다. 1994년 「쇼생크 탈출」이 첫 후보다.

#연도작품
11994쇼생크 탈출
21996파고
31997쿤둔
42000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52001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62007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72007제시 제임스 암살
82008더 리더
92010더 브레이브
102012스카이폴
112013프리즈너스
122014언브로큰
132015시카리오
142017블레이드 러너 2049 — 수상
1520191917 — 수상
162022엠파이어 오브 라이트

2007년 줄을 보면 같은 해에 두 편이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제시 제임스 암살」로 자기 자신과 붙었고, 둘 다 못 받았다.

열세 번 떨어지고 열네 번째에 받은 사람이다.

놀란은 두 사람과 한 시대씩 만들었다

월리 피스터 촬영감독과 열두 해,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과 열두 해다.

피스터는 2000년 「메멘토」부터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까지 놀란 장편을 연속으로 찍었다. 호이테마는 2014년 「인터스텔라」부터 2026년 「오디세이」까지다.

「오디세이」 크레딧을 열어보면 촬영감독 자리에 호이트 반 호이테마가 있다.

콤비가 끊긴 이유는 싸워서가 아니라 일정이었다. 피스터가 자기 첫 연출작을 준비하던 시기와 「인터스텔라」 촬영 시기가 겹쳤다. 한 번 대신 들어온 자리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상은 두 사람 다 놀란 영화로 받았다. 피스터는 네 번째 후보였던 「인셉션」으로, 호이테마는 두 번째 후보였던 「오펜하이머」로.

두 시대의 화면이 실제로 다르다. 피스터 쪽은 도시가 접히고 복도가 도는 세계라 카메라가 세트 안에서 궁리를 많이 해야 했다. 호이테마 쪽은 반대로 카메라를 크게 만들고 실제 앞에 세우는 방향으로 갔다. 아이맥스를 손에 들고 뛰는 「덩케르크」가 그 분기점이다.

감독이 바뀐 게 아니라 카메라가 서는 자리가 바뀐 셈이다.

반대로 계속 바꾸는 감독도 있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촬영감독을 여섯 명 넘게 썼다.

알렉스 톰슨, 다리우스 콘지, 하리스 사비데스, 제프 크로넨웨스, 클라우디오 미란다, 에릭 메서슈미트. 제일 많이 한 게 제프 크로넨웨스인데 그것도 장편 네 편이다.

그러니 오래 가는 짝이 좋은 영화의 조건은 아니다.

핀처 영화가 늘 비슷해 보이는 건 촬영감독이 같아서가 아니라 감독이 화면을 이미 다 정해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현장에서는 누가 와도 결과가 비슷해진다. 반대로 촬영감독에게 많이 맡기는 감독은 사람이 바뀌면 화면이 같이 바뀐다.

한 사람과 오래 가느냐 마느냐는 취향이 아니라 일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여기 재미있는 게 하나 겹친다. 「블레이드 러너」(1982)를 찍은 조던 크로넨웨스 촬영감독이 제프 크로넨웨스 촬영감독의 아버지다. 그리고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로저 디킨스가 찍어서 첫 오스카를 받았다.

그래서 왜 같은 사람을 계속 쓰나

찾아본 걸로는 답이 안 나온다. 다만 숫자가 몇 가지를 보여준다.

한 번 맞으면 오래 간다. 스필버그는 33년째고, 코엔 형제와 디킨스는 「바톤 핑크」부터 「헤일, 시저!」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끊기는 이유가 대체로 실력이 아니다. 스케줄이 겹치거나, 한 사람이 감독으로 가거나, 세상을 떠나거나다.

나도 현장에서 같은 팀과 계속 일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말이 줄어든다. 조명팀이 내가 뭘 원하는지 미리 알고 움직이면 하루에 컷을 몇 개 더 간다. 그게 쌓이면 다른 사람과 새로 맞추는 게 손해가 된다.

이 표는 어디서 온 것인가

전부 IMDb 크레딧 페이지와 아카데미 공식 수상 기록이다.

작품별 촬영감독은 IMDb 각 작품의 전체 크레딧에서 확인했다. 아카데미 후보와 수상은 위키백과 수상 목록으로 세었고, 디킨스 열여섯 건은 IMDb 수상 페이지의 항목 수와도 맞았다.

숫자를 옮기면서 자료마다 갈리는 것도 있었다. 「다크 나이트」의 IMAX 촬영 분량은 자료에 따라 20분에서 40분까지 나와서 적지 않았다.

한국 쪽은 따로 세어봤다.

영상 · 영화서울의 봄과 파묘를 같은 사람이 찍었다 — 한국 촬영감독을 따라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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