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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촬영

영화와 드라마는 왜 조리개가 다를까

알쓸

영화는 조이고 드라마는 열고 간다. 극장 영화에서 T4 근처는 드물지 않고, 미카엘 살로몬이 65mm로 찍은 파 앤드 어웨이는 T4에서 T5.6 사이가 상용 조리개였다. 그레그 톨런드가 1941년에 쓴 기고문도 앞쪽을 살리는 쪽이다.

앞의 넷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이렇다.

렌즈는 점을 점으로 못 맺고, 그 원이 얼마나 작아야 선명한지는 합의로 정하며, 열고 가면 구석이 드러나고, 조이고 가면 회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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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장의 조리개 선택은 화질을 최대로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지 고르는 문제다.

그리고 무엇을 포기할지는 매체마다 다르다.

영화는 조리개를 얼마로 쓰나

극장 영화에서 T4 근처를 쓰는 건 드물지 않다. 미카엘 살로몬이 65mm로 찍은 파 앤드 어웨이의 American Cinematographer 촬영 기록을 보면 T4에서 T5.6 사이가 상용 조리개였다. 개방을 못 써서가 아니라 안 쓰는 것이다.

화면이 크다. 극장 스크린에서 얕은 심도는 과하게 보인다. 배경이 완전히 뭉개지면 공간 정보가 통째로 사라진다. 집에서 볼 때 적당해 보이던 심도가 극장에서는 붕 떠 보인다.

한 프레임에 정보를 같이 담아야 한다. 인물과 공간,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한 화면 안에서 읽혀야 하는 장면이 많다. 뒤에 누가 서 있는지가 이야기인데 뭉개버리면 그 장면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레그 톨런드가 시민 케인을 찍고 1941년에 쓴 American Cinematographer 기고문에도 앞쪽 두 사람과 30~40피트 뒤의 움직임을 둘 다 살려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술에 돈이 들어갔다. 세트를 지어놓고 뭉갤 이유가 없다. 만든 걸 보여주는 것도 촬영의 일이다.

한국 드라마는 왜 심도가 얕은가

실제 로케이션이 많아서다. 배경을 정리할 수 없으니 광학으로 지운 것에 가깝다.

세트를 짓는 대신 있는 공간을 빌려 찍으면 배경이 정리가 안 된다. 간판, 전선, 남의 살림살이가 다 들어온다. 얕게 가면 그게 뭉개져서 정리된다.

인물 중심 서사에 클로즈업 비중이 크다.

작은 화면에서 본다. 얕은 심도가 극장만큼 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얕은 심도가 취향이라기보다 조건에 대한 대응이었던 쪽에 가깝다. 정리 안 된 배경을 광학으로 처리한 것이다. 미술로 해결할 수 없으니 렌즈로 해결한 셈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얕게 가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간 사람도 있을 거고. 다만 경향으로 보면 조건 쪽 설명이 잘 붙는다.

드라마는 요즘 왜 영화처럼 보이나

미술이 좋아졌고, 영화 촬영감독들이 넘어왔다.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미술이 좋아졌다. OTT로 예산이 올라가면서 만들어놓은 공간이 볼 만해졌다. 뭉갤 이유가 줄었다는 뜻이다. 지워야 했던 배경이 이제 보여줄 만한 배경이 됐다.

영화 촬영감독들이 드라마로 넘어왔다. 깊은 심도로 화면을 쌓는 화법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래서 제법 깊게 가는 드라마 작품들이 생겨나고 있다. 배경을 지우는 대신 배경까지 화면의 일부로 쓰는 쪽이다. 같은 장면을 예전 방식으로 찍었으면 배경이 통째로 날아갔을 컷들이 요즘은 살아 있다.

이걸 보면 "얕은 게 드라마 문법"이라는 말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 것에 가깝다. 조건이 바뀌니까 문법도 바뀌고 있다.

현장에서 조리개는 언제 정해지나

남는 자리에서 정하는 쪽과, 먼저 박아놓고 나머지를 맞추는 쪽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는 자리에서 정하는 쪽이다. 얼마나 얕게 갈지를 연출과 합의하고, 광량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보고, 포커스를 따라갈 수 있는지를 따진다. 그 셋이 정해지고 나면 조리개는 사실상 남는 값이 된다. 이쪽이 흔하다.

다른 하나는 먼저 박아놓고 가는 쪽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동선과 공간을 보고, 이 렌즈에 이 조리개로 가겠다고 정해두는 감독들이 있다. 그러면 조리개가 상수가 되고 나머지를 거기 맞춘다. 광량은 조명으로 만들고, 남으면 ND로 뺀다. ARRI 의 FSND 필터 백서도 ND 를 노출은 그대로 두고 원하는 T스톱을 쓰기 위한 도구로 설명한다.

후자가 번거롭다. 조명 규모가 커지고 시간이 든다. 근데 화면이 처음 생각한 대로 나온다.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게 이 일의 묘미 같은 것이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하나다. 렌즈 성능표를 보고 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

상황마다 조리개를 어떻게 정하나

인물 클로즈업 — 열고 가면 눈만 맞고 귀가 나간다. 얼굴이 화면을 채울수록 심도가 얇아지니까, 정면이 아니면 한 스톱 조이고 들어가는 편이 안전하다. ZEISS 가 낸 심도와 보케 기술문서는 심도가 초점거리가 아니라 상의 배율에 주로 달려 있다고 정리한다.

두 사람이 앞뒤로 설 때 — 심도로 해결할지 블로킹으로 해결할지 먼저 정한다. 조여서 둘 다 살리면 배경까지 살아나고, 블로킹으로 나란히 세우면 열고 가도 된다. 대체로 후자가 싸다.

야경, 점광원이 많은 화면 — 코마가 구석에서 터진다. 그 번짐을 화면의 일부로 쓸지, 조여서 정리할지를 정해야 한다. 감수하기로 했으면 구석에 점광원이 안 걸리게 프레이밍으로 피한다.

넓은 실내를 정면으로 — 상면만곡이 나오는 자리다. 중앙에 맞추면 구석이 나가니까, 이럴 때는 조이고 가는 게 거의 유일한 답이다.

광량이 없는데 심도도 필요할 때 — 제일 흔한 딜레마다. 감도를 올릴지, 조명을 더 때릴지, 심도를 포기할지 중에 고른다. 시간이 없으면 대체로 심도를 포기한다.

창가 역광 — 밖이 날아가는 걸 살리려고 조이면 인물이 어두워지고, 인물에 맞추면 창밖이 통째로 날아간다. 조리개로 푸는 문제가 아니라 창밖을 ND로 덮든 인물을 때리든 다른 데서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조리개를 만지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온다.

한 컷 안에서 조리개를 바꿔야 할 때 — 밝은 데서 어두운 데로 들어가는 동선이면 촬영 중에 열어야 한다. 그런데 여는 순간 심도가 같이 얕아져서 초점이 흔들린다. 그래서 조리개 대신 조명을 미리 깔아두고 고정으로 가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다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것도 이 렌즈의 최적 조리개가 얼마냐를 묻지 않는다. 묻는 건 늘 이 컷에서 뭘 버릴 거냐다.

영화가 조이고 드라마가 열었던 것도 취향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그리고 조건이 바뀌면 답도 바뀐다. 지금 드라마가 깊어지고 있는 게 그 증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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